몇 년 만에 블로그판으로 돌아와 보니 망해있었다.
오류 한 줄, 버그 하나를 해결하려고
온갖 블로그와 stack overflow를 뒤져가며
은둔고수가 무심하게 써놓은 한 줄에
빈사 직전의 코드가 되살아 난다.
최근 돌아와 보니
이 블로그 판도 GPT가 점령했다.
똑같이 시답잖은 주제로 복붙 한 듯 올라온다.
양심적으로 ✅ ✔️ 이런 건 지우고 올려야 할 거 아니냐.
그런 GPT가 쓴 똥글에 또 GPT가 쓴 똥댓글이 달린다.
이른바 AI 슬럼가이다.
블로그 내 현자를 찾기 위해서는 이제 수많은 GPT 똥글을 걸러내야 한다.
내 글은 그렇다고 GPT 똥글과 다를까?
이 블로그판에서 그래도 쓸만한, 읽을만한 글을 싸지르기 위해,
글쓰기 책을 샀다.
『기자의 글쓰기 – 싸움의 정석 (원칙 편)』by 박종인
와이즈맵, 2023년 8월 발행. 2016년 개정판. 19,800원.

글쓰기는 '글 생산'이다.
글을 제조업 상품과 동일한 상품으로 규정하고, 글이라는 상품을 제작하는 과정이 글짓기라고 못 박았다.
32년 동안 글을 상품으로써 찍어냈던 베테랑 기자답게,
글쓰기에 있어서도 구조와 공정을 강조한다.
글쓰기 8단계 공정도가 실려 있다.
- 방향 설정 → 재료 수집 → 설계 → 조립 → 검수 → 재조립 → 소비자 검수 → 완성
문장은 기본이거니와 글 전체의 구조와 생산 프로세스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글쓰기의 철칙 3가지
철칙 1) 글은 쉬워야 한다 - 무조건 쉬워야 한다
철칙 2) 문장은 짧아야 한다 - 리듬을 느껴보라
철칙 3) 글은 팩트(Fact)다 - 주장은 팩트, 사실로 포장해야 한다
이 책은 위 철칙 3개를 소개하면서 시작하고,
마지막까지 여러 변주로 재차 강조하는 구성이다.
말은 쉬워야 한다. 어려운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글은 말이다.
글도 쉬워야 한다. 어려운 글은 씨알도 안 먹힌다.
철칙을 몇 번이고 철칙을 활용하여 강조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네 독단적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뭐라고 특별히 변명할 말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구먼. 네드발 군. 물론 자네의 그때 그 상황을 유추해 보자면 자네의 그 불유쾌하면서도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는 차분한 생각과 충분한 고려가 동반되기에는 어려운 점 많을 것이라는 점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네.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네의 결정과 그 결정에 따라 발생하게 된 그 이후의 해괴망측하고도 놀라운 사건들의 연속 안에는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구해보자면 자네의 결정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이 내 생각일세." - 『 드래곤 라자 』by 이영도 13장 中
어릴 적 이영도 선생의 우주명작 『 드래곤 라자 』의 카알 헬턴트 뽕을 거하게 맞아버려 이런 류의 문장을 자유자재로 적재적소한 상황에 기가 막히게 구사하고 싶다는 욕망은 다시는 열어보고도 싶지 않은 싸이월드 시절 뻘글을 마지막으로 비록 이제는 사회적으로 표출하고 있지 않아 고무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먹물 티를 살짝 내 가면서 간지 나게 쓰고 싶다는 욕망은 내면에 여전히 잠재적이고 은밀하게 잔존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기는 하나 현업에서 실제로 먹물 농도를 자랑하는 목적으로 길어야만 하는 글을 뽑아내는 상아탑 내 원로도 아니고 국익을 위해 circumlocution을 최대한 활용하여 확답을 피하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견지해야만 하는 외교계 관료가 아닌 현 상황에서의 본인은 그저 사기업에서 보고서 작성하고 생각날 때 블로그에 이상한 글을 싸지르고 있는 현 상황을 고구해보자면 『기자의 글쓰기』에서 언급하는 글쓰기의 철칙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응축된 글쓰기의 필수 항목이라는 것은 논박의 여지가 없는 필수 소양이라는 생각을 뼈저리게 하게 되었다.
길게 써봐도
읽히지 않는 건 물론이거니와
카알 헬턴트 옹과 달리
간지조차 나지 않는다.
- 리듬 있는 문장은 입말로 쓴다.
- 수식어를 절제한다.
- '~의', '~것', '한편', '본인' 등 사용하지 말 것.
- 상투적인 표현, 사(死)비유 금지.
짧고, 쉽고, 팩트로 설득하는 글.
깔끔한 머리치기 한판에서
오히려 내공이 묻어나는 법.
起 → 承 → 轉 → 結
흔한 서론-본론-결론 구조 대신
기(起)–승(承)–전(轉)–결(結)을 제안한다.
- 기(起): 주제를 바로 던지지 말고, 자연스럽게 유도하라
- 승(承): 이야기를 구체화하되, 엉뚱한 길로 빠지지 말 것
- 전(轉): 흐름을 비틀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라
- 결(結): 확실한 메시지로 마무리하라
원숭이 똥구멍이 왜 백두산인지를 글에서 증명해야 한다.
얘기하고 싶은 주제가 '원숭이 똥구멍은 백두산'이다. 그런데 첫 문장에 '원숭이 똥구멍은 백두산이다'라고 써버리면 더 이상 글을 진행할 수 없다. 더 얘기할 소재도 없고 독자에게 똥구멍이 왜 백두산인지 설득할 수도 없다.
자,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가면 뭐야, 사과야. 사과는 뭐야 맛있지, 맛있는 건 바야. 바나나는 길지? 긴 건 기차, 그런데 기차는 빨라, 빠른 건 비행기야. 비행기는 높지, 높은 게 뭐야, 그래서 원숭이 똥구멍이 백두산인 거야.
독자들이 어어어 하고 읽다 보니까 원숭이 똥구멍이 백두산이 돼버렸다. 이렇게 독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글이다. 원숭이 똥구멍=백두산이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게 글이다.
블로거에게도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읽히는 글을 위해,
명심해야 할 파트이다.
수작이다.
특히 현대 블로그판 글쓰기에 딱 들어맞는 내용이다.
앞으로 『기자의 글쓰기』 에서 강조하는 철칙,
- 짧게, 쉽게, 팩트로.
- '글 생산 프로세스' 확보.
- 기(起)–승(承)–전(轉)–결(結)의 서사.
잊지 않을 것이다.
이를 지키기 위해...
나는 chatGPT 프롬프트에 『기자의 글쓰기 체크리스트』를 먹인다.
다음은 박종인 작가의 신작
기자의 글쓰기 : 싸움의 기술 (실전편)
작성 예정.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8415118
기자의 글쓰기:원칙편 싸움의 정석 | 박종인 - 교보문고
기자의 글쓰기:원칙편 싸움의 정석 | 재미가 없으면 아무도 읽지 않는다. 악마도 감동할 당신만의 글을 써내라!자기소개서, 보고서, 에세이 그리고 한 권의 책까지 31년 기자 경력, 12권의 베스트
product.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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