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일 새벽 Yes24에서 랜섬웨어 관련 사고가 터졌다.
사실 처음에는 곧 복구될테고 별 일 아니겠거니 했다.
그런데 독서를 위해 yes24 crema 앱을 열었을 때,
어처구니 없게도 "구매목록을 불러올 수 없다"는 멘트만 멍청하게 떠 있엇다.
K-ebook은 E-PUB이든 PDF든 DRM으로 알뜰살뜰하게 막아놓고,
허접스러운 자체 뷰어를 통해서만 독서가 가능하다.
(글씨 크기만 바꾸어도 다시 처음부터 한참을 로딩하는게 실화냐?)
그 자체 뷰어를 제공하던 업체가 문제가 생기니,
구매목록을 못 불러와서 책을 열 수 없는 정신나간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가뜩이나 좁아터진 집구석에 종이책을 쌓아두는데도 한계가 있고,
디지털 전환 시대에 무슨 구시대적 종이책이냐 하는 심정으로,
2013년부터 현재까지 12년 동안 792권의 ebook을 yes24로만 구매해왔다.
금액으로는 대충 어림잡아도 2,000만원은 족히 될 것이다.

당장 책을 볼 수 없는 어이없는 상황보다는 아래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K-조선은 진짜 디지털을 만든 적이 없다.
다만, 디지털처럼 보이게 하는 데는 성공한 나라였다.
GPT가 연 새로운 독서방식
이제 책은 더이상 '읽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읽은 순간부터, 해체되고, 연결되고, 요약되고, 조립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수작업이 아니라 자동화된 흐름 안헤서 이루어진다.
Amazon Kindle 앱은 highlight한 문장을 단순히 앱 내부에 저장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highlights를 한꺼번에 export 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highlight 할 때마다 작성시간, 책 제목, 챕터명 등 메타데이터를 포함해
외부 앱으로 실시간 전송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가
Kindle → Readwise → Obsidian → GPT으로 이어지는 지식 연동 파이프라인이다.
Obsidian에는 내가 읽은 모든 책의 highlight가 자동으로 쌓인다.
highlight는 문장 단위로 구분되고, 출처가 명확히 기록되고,
태그나 링크로 정돈된 노트가 만들어진다.
노트들이 쌓이면 GPT가 노트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하고 요약한다.
중복된 개념이 묶이고, 연결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이제는 지식노동도 생산성과 속도전이다.
이 모든 과정은 과거엔 전부 수작업이었다.
밑줄을 긋고, 공책에 필사하고, 한참을 숙고한 뒤 정리하고,
다시 책장을 넘기며 맥락을 복기하고,
가끔은 몇 주 지난 다음에야 겨우 아이디어 하나 떠오르곤 했다.
그 시절의 지식은 마치 된장 고추장처럼 오래도록 숙성시켜놓고,
언젠가 문득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방식이었다.
이른바 세렌디피티 메커니즘.
실로, 수작업·노가다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제 이 지식노동에도 컨베이어 벨트가 들어왔다.
GPT는 내용을 요약하고, highlight는 자동으로 구조화되며,
읽는 순간부터 이미 지식은 흐르고 조립되는 상태에 진입한다.
블루칼라가 자동화의 물결에 밀려났듯,
화이트칼라도 이제는 예외가 아니다.
그들이 아직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건,
어쩌면 단지 한 줌의 가오와 관성 덕분일지도 모른다.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생산단가는 낮춰야 하고, 생산성은 높아져야 한다.
지식도 예외가 아니다.
생각도 이제는 시스템 위에서 만들어지는 시대다.
책 한 권보다 중요한 건 연결의 흐름이다
과거엔 책 한 권의 완성도, 그 자체가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책이 어떤 노드들과 연결될 수 있는가,
즉, 텍스트가 지식망에 어떻게 녹아들 수 있는가가 훨씬 중요해졌다.
네트워크 이론에 따르면,
개별 점(point)이 아니라 연결된 노드(node)가 진짜 가치를 만든다.
책은 점이고, GPT 기반 정리 시스템은 그 점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다.
그 네트워크 안에서 문장은 아이디어가 되고,
아이디어는 흐름이 되며, 흐름은 새로운 아이디어 가치 창출로 이어진다.
이제는 책 한 권의 가치보다,
그 책이 흐르는 생태계의 구조가 더 중요하다.
K-ebook은 디지털이라는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디지털이 줄 수 있는 핵심 가치—복사, 공유, 연결, 가공—는
구조적으로 전부 차단되어 있다.
텍스트는 앱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없고,
하이라이트는 내부 시스템에만 갇혀 있으며,
백업은 불가능하고, API 연동 같은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결국 K-ebook은 ‘과거의 종이책’을 흉내 낸 디지털의 열화판에 불과하다.
단지 화면에 비출 수 있게 되었을 뿐,
그 어떤 ‘디지털적 속성’도 사용자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어디 K-ebook 뿐만이겠는가.
“막아야 안전하다”는 보안 만능주의 아래에서
망분리, DRM, 공공기관 전용 뷰어 같은 갈라파고스적 해괴함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는 정보가 쌓이지도 않고, 흐르지도 않는다.
K-조선은 진짜 디지털을 만든 적이 없다.
다만, 디지털처럼 보이게 하는 데는 성공한 나라였다.
다시 종이책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요즘 다시 종이책을 산다.
그리고 읽은 책은 Scansnap으로 PDF를 뜨고,
그 파일을 GPT에게 먹이고, 요약하고, 노트화하고, 다시 연결한다.
과거엔 이게 비효율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이 방법이야말로 K-조선에서 진짜 ‘내 책’을 만드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K-ebook은 가볍고, 편하고, 수백 권을 들고 다닐 수 있지만,
정작 연결이 없다면, 그건 단지 '허가된 열람'일 뿐이다.
소유보다 중요한 것은 연결성
요즘 세상은 점점 더 '연결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시대'로 가고 있다.
책이든, 데이터든, 돈이든, 심지어 사람 사이의 정보조차도
연결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요컨대, 만물의 API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다음에는 Scansnap을 활용한 종이책 PDF화를 소개할 생각.
AI시대를 위한 육체노동이라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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